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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하루가 지났습니다. 야간 열차를 타고 쿠시로로 향합니다. 다음 목표는 유빙입니다. 44~46편에서는 유빙을 마음껏 구경하실 수 있을 겁니다.

 

 

 

 

 

42. 2월 8~9일 - 쿠시로습원[釧路湿原]에서 맞이하는 새해(上)

 

   밤 늦은 시간이었지만 삿포로역은 여전히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은 일을 마치고 집으로 귀가하는 경우이다. 물론 우리처럼 삿포로역에서 출발하는 야간 열차를 이용하는 관광객들도 있다. 홋카이도의 방대한 크기 때문에 아바시리[網走], 왓카나이[稚内], 쿠시로[釧路] 같은 곳에 가려면 시간 관리 상으로 야간 열차가 편리하다.

 

 

   이미 우리가 탈 쿠시로행 야간 열차인 특급 마리모(まりも)는 승강장에 들어와 있었다. 낮에 운행하는 특급 열차인 슈퍼오조라(スーパーおおぞら)와는 달리 키하 183系이고 중간에는 침대 객차가 2량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좌석은 4호차이다. 침대 객차 뒤에 달려 있었다. 들어가 보니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뒤에는 5호차가 있었는데 역시 텅텅 비어 있었다. 그래도 좌석이 지정되어 있어서 정해진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차장이 오더니 뒤쪽 차량으로 옮기라고 하였다. 5호차 뒤에 다시 4호차가 있었고 여기에는 승객들이 절반 이상 차 있었다. 의자가 많이 넘어가지 않는 일반 객실에서 그래도 잘 자려면 남는 자리가 많아서 의자 4개를 차지하는게 최상인데 현 상태로는 어쩔 수 없었다.

 


No. 43 철도편 : 삿포로[札幌] 23:00→쿠시로[釧路] 5:50
열차번호 및 종별 : 4013D 特急 まりも, 거리 : 348.5km, 편성 : 키하 183系 5兩+14系 침대차 2兩(4号車 キハ 183-501)

 


   특급 마리모는 현재 삿포로와 쿠시로 간을 연결하는 야간 특급열차이다. 여름 성수기에는 네무로[根室]까지 연장 운행되며 원래 쿠시로역에서 접속되는 열차 대신 직통으로 운행하므로 쿠시로~네무로 간은 특급권 없이 탈 수 있는 쾌속 열차가 된다. 그러나 지정석이나 침대차는 쾌속 열차 구간만을 이용할 수 없다. 또한 이 열차는 침대 객차를 2량 연결되어 있다. 다른 열차와는 달리 이 열차의 침대는 비수기인 11~5월에는 3,000엔이라는 파격적인 침대 요금을 받는다. 홋카이도 프리패스[北海道フリーパス] 그린샤용으로는 추가 요금 없이 이용이 가능하다.

 

   마리모는 아칸호[阿寒湖] 주변에서 자라는 꽃의 이름이다. 열차 이름으로서의 마리모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자. 마리모는 1951년 하코다테[函館]~쿠시로 간을 연결하는 야행 급행열차의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다. 이 당시에는 세키쇼선[石勝線]이 없었으므로 타키카와[滝川]를 통해서 네무로본선[根室本線]으로 들어갔다. 1965년에 하코다테~삿포로 간을 나누면서 마리모는 삿포로~쿠시로 간의 야행 급행열차가 되었다. 1968년에 삿포로~쿠시로 간을 주간에 운행하는 열차의 명칭인 카리카치[狩勝]로 이름이 통일되면서 마리모라는 이름은 없어졌다. 1981년에 세키쇼선이 개통되면서 쿠시로 방면 우등 열차가 이 선로로 모두 운행되면서 삿포로~쿠시로 간의 급행 열차 이름으로 마리모가 부활되었다. 1982년부터는 14系 객차로 운행하였으나 1993년에 키하 183系 디젤차에 침대 객차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열차 이름이 오오조라(おおぞら) 13, 14호로 바뀌면서 다시 마리모는 사라졌다. 2001년에 낮에 운행되던 키하 183系였던 오오조라가 틸팅 디젤차인 키하 283系로 모두 바뀌고 열차 이름로 슈퍼 오오조라(スーパーおおぞら)가 되면서 야간 열차는 다시 원래의 이름인 마리모로 되돌아왔다. 그러니, 마리모라는 이름은 같은 구간을 운행하는 열차지만 차량과 계통에 따라 없어졌다 부활하다를 반복하였다. 2001~2005년 동안에는 여름 성수기에는 네무로[根室]까지 연장 운행하기도 하였으나 줄어드는 승객을 감당하지 못하여 2007년 10월 1일부터는 주말이나 성수기에만 다니는 임시열차로 격하되었으며 2008년 8월 31일에는 마지막 운행을 하면서 폐지되었다.

 

   열차는 삿포로역을 출발하여 치토세선[千歳線]을 달린다. 동력이 없는 침대 객차가 연결되어서인지 낮에 운행되는 열차에 비하여 속도감이 떨어진다. 미나미치토세[南千歳]역을 지나자 차내 조명은 어두워진다. 이제 더 탈 사람은 없을 걸로 여기고 빈 자리를 차지하고 의자를 돌려서 4개 자리를 차지하고 잠을 청하였다.

 

   열차는 운행시간이 여유가 있어서인지 중간에 한참을 정차하기도 하고 천천히 가기도 하면서 느릿느릿 가는 듯 하였다. 이런 걸 알 수 있는 건 4개의 자리를 차지하였음에도 좌석이 불편하여 중간에 여러 번 자다깨다를 반복하였기 때문이다. 잠에서 깨니 온베츠[音別]역에 정차하고 있었다. 새벽 5시였다. 온베츠역에 출발하자 바로 조명이 밝아지면서 차내에는 쿠시로 도착 안내방송을 하였다. 아직 50분 정도 더 가야 하는데 차장의 마음이 너무 급하다. 차내가 밝으니 잠도 더 오지 않았다. 짐을 정리하고 간단히 세수를 하였다. 밖은 아직 어두웠다. 열차는 제 시간에 쿠시로역에 도착하였다.

 

 

   쿠시로[釧路]는 홋카이도 동쪽 지방인 도토[道東] 지방의 중심 도시이다. 수산업이 발달하였고 우리나라에서도 쿠시로에서 수입된 수산물을 볼 수 있다. 쿠시로는 네무로[根室] 방면과 쿠시로습원[釧路濕原]으로 가는 교통의 요지이다. 아쉬운 점은 많은 열차가 환승 시간이 너무 짧아서 역 밖을 둘러볼 여유도 없다. 우리 일정도 쿠시로역에서의 환승 시간은 겨우 9분이다. 아직은 어두운 승강장을 둘러보고 다음 열차를 타야 한다.

 

   이제는 2월 9일이다. 음력상으로는 1월 1일, 설날이다. 여유 있게 여행할 수 있는 기간은 명절밖에 없어서 어김없이 올해 설날도 일본에서 맞이하고 있다. 일본은 우리와는 달리 양력 설만을 지내는 게 정말 다행이다. 이곳 쿠시로는 일본에서도 동북쪽인지라 해가 빨리 뜨고 진다.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보다 새해 첫 해를 먼저 볼 수 있다.

 

 

   오늘 일정의 핵심은 유빙(遊氷)이다. 유빙을 보기 위하여 센모본선[釧網本線] 열차를 탔다. 3년 전에 센모본선 전구간을 탄 적이 있지만 밤이라서 제대로 경치 구경을 하지 못하였다. 이 동네는 겨울에도 아침에 해는 일찍 뜨니깐 아예 새벽 열차로 일정을 짰다.

 

   지하도를 건너 가니 센모본선의 오늘의 첫 열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키하 54系 1량 편성이다.

 


No. 44 철도편 : 쿠시로[釧路] 5:59→시레토코샤리[知床斜里] 8:31
열차번호 및 종별 : 4726D 普通, 거리 : 131.8km, 편성 : 키하 54系 1兩(ワンマン, キハ 54-523)

 


   키하 54系는 0번대인 시코쿠 사양과 500번대 홋카이도 사양이 있다. 둘 다 1량으로 운행이 가능한 차량이다. 시코쿠 사양은 롱시트에 화장실이 없는데 반하여 홋카이도 사양은 화장실이 있고 좌석은 특급 차량에서 나온 좌석을 사용하고 있어서 크로스 시트이지만 회전은 되지 않고 창과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키하 54系는 차량의 힘이 기존의 키하 40系에 비하여 세고 겨울의 혹한과 눈 속에서도 주행 능력이 뛰어나서 현재 홋카이도 로컬선에서 운행되고 있다. 최고속도는 95km/h이지만 대차를 바꾸면 110km/h까지 가능하다.

 

   이른 아침이지만 환승을 한 승객들이 많아서 좌석의 절반 이상이 차 있다. 게다가 토오야[遠矢]역에서는 통학하는 학생들이 탄다. 통학생들은 열차 뒤편에 자리를 잡고 있다. 홋카이도 원맨 열차들은 역원이 있는 역을 제외하고는 뒷문은 열리지 않으니 이들에게는 좋은 아지트이다.

 

 

   날도 아직 어둡고 안개가 많이 끼여 있어서 멀리까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열차는 가끔씩 급정거를 한다. 이 지역은 습원이고 자연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어서 야생 동물들이 많이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가끔씩 철로에 들어가 있는 야생 동물이 있어서 급정거를 하게 된다. 특히 사슴이 많다. 센모본선과 하나사키선[花咲線]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워낙 갑자기 생기는 상황이라 사진을 찍어보려고 하였지만 번번이 실패하였다.

 

   열차가 고개를 올라가는지 눈은 더 많아지고 안개도 더 자욱해졌다. 그래도 해는 떠서 밖은 그런대로 밝아졌다. 열차는 센모본선에서 몇 안 되는 유인역인 시베챠[標茶]역에 도착하였다. 뒤에 타고 있던 통학생들은 열린 뒷문으로 모두 내렸다. 이 역에는 열차 교행을 위해 7분 동안 정차한다.

 

 

   나도 재빨리 열차에서 나와서 역으로 갔다. 스탬프를 찾는데 보이지 않는다. 역 직원에게 물어보니 무언가 찾으러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 사이에 역 밖으로 나와서 역 건물을 사진에 담았다. 다시 대합실로 가니 친구가 직원이 스탬프 찍으려는 사람이 어디 있냐면서 찾고 있다는 것이었다. 역 건물 한쪽으로는 SL관(館)이라는 전시실이 있었고 여기에는 SL에 관한 여러 자료와 쿠시로 습원에 관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스탬프는 자료실 안에 있었다. 직원이 잠시 사라진 이유도 내가 스탬프를 찍을 수 있도록 자료실 문을 열어주기 위함이었다. 다시 승강장으로 돌아와 보니 아직 바뀌는 열차는 들어오지 않았다.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승객들은 줄을 서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의 질서 의식과 출입문 위치를 정확하게 표시하여 놓은 철도 회사의 합작품이다.

 

 

   다시 우리가 타고 온 열차에 들어왔다. 바뀌는 열차가 시베챠역에 도착하자 열차는 출발하였다. 이제 밖은 더 밝아지고 안개도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겨울이라 푸른 습원을 보지 못하여 하얀 눈밭을 구경하는게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현재(2009년)는 홋카이도 내에서 운행하는 야간열차는 모두 폐지되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쿠시로습원[釧路湿原]에서 맞이하는 새해(下)'가 연재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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