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이야기/동해선의 역(驛)

전산 오류(?)로 하차할 수 있었던 동해남부선 나원역(羅原驛) 방문기

일인승무ワンマン 2010. 11. 16. 16:09

   2010년 11월 1일에 경부고속철도 2단계 구간이 개통되면서 전국적으로 열차시각표가 조정되었다. 고속철도에 가려서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동대구역과 포항역을 연결하는 무궁화호가 하루에 2회만 남고 나머지 시간대에는 경주역에서 환승할 수 있게 경주역과 포항역을 오가는 열차가 8왕복이 신설되었다. 경주역에서 환승하면 소요 시간이 더 늘어나고 운임도 조금 비싸지기에 동대구와 포항 간은 철도는 경쟁력이 상실되어서 코레일에서 포기한 걸로 많은 철도팬들이 판단하고 있다.

 

   언론은 물론 코레일에서도 직접 언급이 없었지만 바뀐 시각표로 예매가 가능해진 10월 중순에 조회하였을 때에는 경주역과 포항역을 연결하는 무궁화호 중에서 일부는 여객 취급이 중지되었던 나원역, 사방역, 부조역에 정차한다고 되어 있어서 철도팬들의 기대를 높였다. 하지만 11월이 되기도 전에 부조역은 여객 취급이 취소되었으며 사방역은 11월 1~2일에만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열차가 정차하였으나 결국 취소되었다. 나머지 나원역은 유인역이라서 그런지 12월 9일까지는 열차가 정차하는 걸로 조회가 되었다. 이미 나원역을 방문하신 분의 글로는 직원이 험한 소리를 하면서 승차를 막았다고 하고 경주역에서도 정차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하였다. 그런 상황인데 코레일 홈페이지에서 떡하니 조회가 되고 승차권 구입이 가능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신경주역 방문과 함께 나원역도 같이 가 보기로 하였다. 2006년에 나원역에서 내린 적(관련 글 보기)이 있으므로 4년만에 기차를 타고 나원역에서 내리는 셈이었다. 물론 작년에 자전거를 타고 방문하기도 하였다(관련 글 보기). 통일호 열차가 여러 번 정차했던 2006년 당시와는 달리 나원역에는 하루에 1회만 열차가 정차하고 그것도 아침 8시대이다. 경주역에서 타면 짧은 구간이지만 기본 운임인 2,500원을 내야 하므로 환승하여 갔다.

 

 

   포항으로 가는 열차를 경주역에서 환승하여 갈 수 있다는 건 취지는 좋다. 무슨 이유인지 부산이나 울산 쪽에는 전혀 그런 안내가 없다. 게다가 코레일 홈페이지에서는 부산이나 울산에서 경주역에서 환승하여 포항으로 가는 승차권은 조회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반대 방향은 조회가 된다. 코레일에 민원을 넣어 보았으나 개선하겠다는 답변만 받았다. 다행히도 2010년 11월 24일부터는 이러한 환승도 조회가 되기 시작하였다.

 

   물론 역에서는 인터넷이나 자동발매기에서 조회되지 않는 환승 승차권도 구입할 수 있다. 지하철 첫차를 타고 해운대역에 왔다. 매표소에서 목적지를 '나원'이라고 하니 직원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을 보인다. 경주에서 환승하면 갈 수 있다고 하니 경주 환승으로 조회하더니 '나원'이 맞냐고 모니터를 보여주면서 확인해보라고 한다. 맞다고 하니 승차권을 무사히 구입할 수 있었다.

 

 

   이른 아침이라고 한산하지는 않다. 지하철도 첫차이지만 자리가 없어서 서서 왔고 해운대역에서 탄 무궁화호도 출근하는 승객들로 절반 이상 좌석이 차 있다. 울산역에서 이름이 바뀐 태화강역에서 많이 내리지만 타는 승객은 호계역이 더 많다. KTX 울산역의 영향 때문인가? 울산에서 대구로 가는 경우에는 울산역에서 KTX를 타면 태화강역에서 무궁화호를 타는 것보다 1,300원 정도 더 비싸지만 24분만에 간다. 무궁화호는 거의 2시간 가까이 걸리니 울산역으로 가는 시간을 감안해도 훨씬 빠르고 비용 차이도 크게 나지 않는다.

 

 

   경주역에는 1분 빨리 도착하였다. 맞은 편 승강장에는 포항으로 가는 무궁화호, 즉 갈아탈 열차가 기다리고 있지만 아직 25분이나 남아 있어서 경주역을 둘러보았다.

 

 

   경주역에는 환승 안내가 있고 방향별로 승강장이 정해져 있다. 방향별로 승강장을 정해놓기보다는 포항행 열차와 환승하기 좋도록 부전으로 가는 열차라도 교행하는 열차가 없을 때에는 3번 승강장에 정차하여 동일 승강장 환승으로 하였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경주역에는 경주~포항 사이에는 무궁화호가 34회 운행하고 빠르고 저렴하다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상대는 적어놓지 않았지만 당연 시외버스이다. 현재 경주~포항 간의 시외버스는 5:30부터 자정까지 운행하고 있으며 새벽과 심야를 제외하고는 5~10분 간격으로 운행하고 있으며 40분이 걸리고 요금은 3,100원(심야 3,400원)이다.

 

 

   동대구역에서 오는 무궁화호가 도착하였고 나는 포항행 무궁화호를 탔다. 차내에는 4량 모두 합쳐서 승객이 15명 정도 있었다. 이중에서 환승한 승객은 겨우 2명이었다. 잘못 타는 걸 막기 위함인지 차장이 차내를 돌면서 목적지를 물어본다. '나원'이라고 하자 '예~'하고 간다.

 

 

   아무 문제가 없는 걸로 생각하였는데 한 바퀴 돌고 온 차장이 '나원역은 정차역인지 운전 정차인지 아직 잘 모르겠네요. 승차권은 있으시나요?'라고 물어본다. 승차권을 꺼내서 보여주자 '해운대에서 경주 환승 나원이라, 일단 타고 가시죠.'라고 한다. 여객 취급을 정식으로 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어떻든 내릴 수 있다는 의미 아닌가?

 

   경주역을 출발한 열차는 6분을 달려서 드디어 나원역에 도착하였다. 도착 안내 방송은 없었지만 출입문은 열려서 승강장으로 나왔다. 이 역에서는 열차 교행을 하니 안전을 확인한 후 역 건물이 있는 승강장으로 건너가서 사진을 찍으면서 교행하는 새마을호를 기다렸다.

 

 

   역 건물 앞의 승강장에서 청소를 하고 있던 직원이 나를 발견하고 웃으면서 부드럽게 물어본다. 처음에는 교행을 기다리는 동안 잠시 바람쐬러 나온 승객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해외에서는 열차 교행 등으로 오랜 시간 정차하면 이렇게 나와서 사진도 찍고 바람을 쐬는 경우가 많았지만 국내에서는 정차 시간이 짧아서 그런 적이 별로 없기는 하지만......

 

직원 : 여기는 정차역이 아닙니다. 다시 열차에 돌아가서 빨리 타세요.

나 : 저는 이 역에서 내리는데요.
직원 : 승차권은 있으시나요?
나 : 예, 이 역까지 승차권을 끊고 왔습니다.
직원 : 이 역은 여객 취급을 하지 않습니다.
나 : 그러면 승차권 발매가 되지 않아야 맞지 않습니까?
직원 : 그건 전산 오류입니다.
나 : 오류면 맞게 고쳐야 하지 않습니까?
직원 : 고쳐야지요.

 

   그 사이에 새마을호는 통과하였고 내가 타고 온 무궁화호도 출발하였다.

 

 

나 : 나갈려면 저쪽으로 가면 됩니까?
직원 : (웃으면서)여객 취급을 하지 않는 역이라서 원칙적으로 안됩니다만 나가도 됩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오셨나요?
나 : 부산에서 왔습니다.
직원 : 무슨 일로 나원에 오셨나요?
나 : 나원역이 여객 취급이 재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왔습니다. 인터넷에서는 철도팬들에게 유명하던데요.
직원 : 그렇군요.

 

 

   직원이 대합실로 통하는 문을 열어주었다. 대합실로 가니 이전과 하나도 달라진 게 없었고 역 건물도 마찬가지였다. 여객 취급이 부활하였다면 대합실에 시각표도 붙어 있고 역 건물에는 축하 현수막이라도 있어야 맞다.

 

 

   결국 나원역의 여객 취급은 코레일 본사와 경주관리역 사이에 무언가 서로 업무 연락이 맞지 않아서 발생한 해프닝이 되어 버렸다. 전산 오류를 수정하겠다는 직원의 말은 결국 실행에 옮겨져서 밤에 돌아와서 조회를 해 보니 당장 내일(2010년 11월 16일)부터 나원역은 정차역에서 사라졌다. 이미 발권한 승차권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나원역에서 정기 열차를 타거나 내릴 수는 없다.

 

   나원역은 정차하는 정기 열차는 없지만 가끔씩 라원리 주민들의 관광 열차가 출발하고 있다. 동해남부선 복선 전철화로 철길이 이설되면서 나원역은 없어지므로 나는 나원역을 이용한 가장 마지막 정기 열차 승객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