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04년 1월 19일 - 키스키선[木次線]의 시작점인 신지[宍道]역
잠에서 깨어나니 시간이 아침 5시 30분이 넘었다. 잠이 들어서는 정신없이 잔 셈이다. 열차는 여전히 달리고 있었고 아직 해가 뜨지 않아서 밖이 어두웠다. 열차는 천천히 역에 정차하였다. 반대쪽 창문을 보니 115系 전동차가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침에 처음 정차하는 미하라[三原]역이다. 다른 분들의 여행기에서도 여기서 잠을 한 번 깬다고 하였는데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난 중간에 내려야 하기 때문에 잠에 들면 안된다. 눈만 감고 있었다. 6시가 넘어서자 차장이 나에게 와서 조금 후에 쿠라시키[倉敷]에 도착한다고 알려주었다. 일종의 깨우미 서비스이다. 짐을 챙기고 객실에 있는 우리나라 사람과 가볍게 목례를 한 후 열차에서 내렸다. 내리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다른 열차와는 달리 차장이 차장실에서 목을 내밀어 안전을 확인한 후 출발하였다. 이 열차의 기관차는 이미 혼슈에서 쓰는 EF65로 바뀌어져 있었다.
쿠라시키는 한자로도 알 수 있듯이 창고가 많이 있는 도시이다. 지금까지도 많은 창고가 남아있다고 한다. 이 창고들은 18세기 말에서 19세기까지의 기간에 대부분이 만들어져서 중요한 문화 유적이다. 시간이 되면 쿠라시키 시내를 구경하고 운하도 보면 좋겠지만 내가 이곳에 내린 건 솔직히 열차를 갈아타기 위함이다. 쿠라시키는 산요본선[山陽本線]과 하쿠비선[伯備線]의 분기역이다. 그렇지만 실제 하쿠비선 열차는 쿠리시키 시발이나 종착은 없고 모두 오까야마[岡山]를 기점으로 운행되고 있다.
쿠라시키역에서의 여유 시간은 겨우 10분이다. 역에 올라가서 스탬프만 받고 다시 승강장으로 내려왔다. 산요본선 승강장은 이른 아침인데도 출근하거나 등교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도착하는 산요본선의 보통열차는 만원이었다. 그래서인지 115系 4량 편성을 두 개 연결한 8량 편성으로 운행되고 있었다. 반면 내가 열차를 타려는 하쿠비선 승강장은 매우 한산하였다. 나 이외에는 할머니 한 분만이 계셨다. 한 량을 빼고는 모두 침대인데다가 지정석을 탄다고 해도 할인 표를 전혀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일본인은 이용이 적다. 제 시간보다 3분 늦게 내가 탈 선라이즈이즈모[サンライズ 出雲]가 들어왔다. 285系 전동차 7량 편성이다.
No. 12 철도편 : 쿠라시키[倉敷] 6:45→이즈모시[出雲市] 10:04
열차번호 및 종별 : 4031M 寝台特急 선라이즈 이즈모[サンライズ 出雲], 거리 : 204.8km, 편성 : 285系 7兩(12号車 ノビノビ 좌석)
내 좌석이 있는 12호차로 갔다. 정확히는 좌석은 아니다. 카페트 위에 구역이 나누어져 있으니깐. 처음으로 노비노비 좌석을 탄다. 이미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어서 객실 내는 한산하였다. 그래도 내 자리는 얇은 이불이 잘 개어져 있고 그 위에 조그마한 안내서가 있었다. 간단히 살펴보고 자리를 정돈하였다. 창문을 통하여 밖이 보이기는 하지만 낮은데다가 앉아있기에는 천장이 낮아서 자세를 잡기는 힘들었다. 침대열차니 괜한 욕심을 부리지 말고 목적에 충실하기로 하였다. 키스키선[木次線] 구경을 위한 체력 보강을 위하여 또 잠을 잤다. 앞에 탄 나하(なは)호의 레가토시트도 잠자기에는 나쁘지 않았지만 카페트에 누워자는 노비노비하고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확실히 누워서 자는게 편했다. 중간중간에 열차 교행 때문에 역이나 신호장에서 서 있기도 하였지만 어디인지도 신경쓰지 않고 계속 잤다.
하쿠비선은 산요[山陽]과 산인[山陰] 지방을 연결하는 노선이다. 중간에 츄코쿠 산맥이 있어서 커브가 많고 경사가 심하다. 이를 극복하고자 낮 시간대에 운행하는 특급열차인 야쿠모(やくも)호는 381系 틸팅 전동차로 운전된다. 내가 탄 선라이즈 이즈모호는 381系보다 최고속도는 더 빠르지만 틸팅 열차는 아니기 때문에 실제 하쿠비선에서는 소요시간이 더 걸린다. 오까야마에서 요나고까지 야쿠모에 비하여 약 30분 정도 더 걸린다. 물론 하쿠비선이 부분 복선이기 때문에 열차 교행 대기 시간도 있겠지만 주된 요인은 곡선에서의 통과 속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일어나기가 싫을 정도로 편했지만 열차는 천천히 종착역 이즈모시[出雲市]역에 도착하였다. 짐을 챙겨 열차에서 나왔다. 이즈모시역은 고가로 되어 있고 역 북쪽으로는 사철인 이찌바타[一畑]철도의 덴테츠이즈모시[電鉄出雲市]역이 있었다. 이치바타철도는 산인 지역의 몇 안되는 사철로서 신지호 이북 지역을 연결하고 이즈모 지역에서 유명한 이즈모타이샤[出雲大社]까지 노선이 있다. 내년에 이곳을 방문할 예정이니 그때 이즈모타이샤의 모습을 자세히 볼 것이다.
이 역도 열차를 갈아타기 위하여 내렸다. 내가 타고 온 선라이즈 이즈모호에서는 약 30명 가까운 승객이 내렸다. 종착역에서 이 정도면 꽤 승객이 있는 편이다. 침대특급이 전체적으로 항공기에 밀려서 사양길이라고 하지만 이 열차는 예외인 듯 하다. 내가 갈아탈 열차는 반대편 승강장으로 들어오는 쾌속 아쿠아라이너(アクアライナー)호이다.
선라이즈 이즈모호도 키스키선의 출발점인 신지[宍道]역에 정차하지만 그러면 오랜 시간 신지역에서 보내게 되어 이렇게 되돌아오게 일정을 짰다. 키스키선의 열차시각이 잘 맞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
No. 13 철도편 : 이즈모시[出雲市] 10:09→신지[宍道] 10:26
열차번호 및 종별 : 3450D 快速 アクアライナー(ワンマン), 거리 : 15.7km, 편성 : 키하 126系 2兩(キハ 126-3, 1003)
키하 126系는 산인본선의 고속화가 이루어진 후 키하 187系와 더불어 새로 도입한 차량이다. 보통열차로 운행되는 디젤차 중에서는 가장 최근에 나왔다. JR서일본은 개조하여 계속 사용하는 차량이 많기로 유명한데 관광열차를 제외하고는 디젤차를 개조하였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하였다.
키하 126系는 2001년에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기본이 2량 편성이고 원맨 운전이 가능한 설비를 갖추고 있다. 최고속도는 100km/h이다. 객실 내에는 박스 시트로 되어있고 벽면이 나무색으로 되어 있어 보통열차이지만 매우 고급스러운 느낌이 난다. 당연히 앞은 유리로 뻥 뚫려있으며 차내에 LED 안내판이 있어서 정차역을 한자와 영어로 보여준다. 차량 외부의 행선지표시기도 LED이다. 장애인의 승하차를 배려하기 위하여 문은 매우 넓고 그에 대응하는 화장실이 있다. 나중에 타 보는 125系 전동차와 차량 시설은 거의 같다. 키하 126系는 모두 고토[後藤]차량사무소에 소속되어 있다. 고토차량사무소는 요나고[米子]에 있다. 주로 요나고를 중심으로 하는 쾌속 열차인 아쿠아라이너(アクアライナー), 톳토리라이너(とっとりライナー), 그리고 보통 열차로 사용되고 있다. 2003년 가을에는 키하 126系와 거의 같지만 양운전대가 있어서 1량 편성도 가능한 키하 121系가 새로 투입이 되었다. 키하 121系는 1량 편성이지만 장애인 대응 시설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고 화장실까지 있다.
디젤차라서 소음이 있기는 하지만 경쾌하게 잘 달렸다. 시끄러운 CDC(Commuter diesel car)하고는 비교가 안 된다. 내가 타고 가는 거리는 얼마되지는 않지만 열차가 많이 다니는 구간이고 단선이라서 역마다 반대방향으로 가는 열차와 바뀌었다.
금방 3개역을 가서 신지[宍道]역에 도착하였다. 신지역은 키스키선[木次線]이 분기하지만 작은 시골역이다. 신지라는 이름은 호수에서 유래한다. 신지 호수는 시마네[島根]현 북동부에 있는 둘레가 약 48km인 일본에서 7번째로 큰 호수이다. 호수를 사이에 두고 남쪽으로는 산인본선이 지나고 북쪽으로 이치바타[一畑]전철이 운행되고 있다. 물론 호수 크기 때문에 상대방 노선이 보이지는 않는다. 호수의 동쪽에는 시카네현의 현청소재지인 마츠에[松江]시가 위치하고 서쪽으로는 신지가 있다. 신지 호수는 일부는 바다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담수에 약간의 해수가 섞여 있고, 이 때문에 풍부한 어패류가 서식하고 있다. 특히 재첩이 명물이라고 한다.
신지역 직원은 매우 친절하였다. 역에는 철도 이용을 촉진하는 포스터가 붙어있었고 산인 지역 관광 안내 책자가 있었다. 다음 열차를 타기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있어 역 밖으로 나가 보았지만 호수하고는 조금 떨어진 위치였다. 역 건물에서 서쪽으로는 키스키선에 승무하는 운전사들을 위한 휴게 시설이 마련되어 있었다.
11시가 되자 열차를 타기 위해 개표구를 통과하였다. 시골역이라서 표 확인은 하지 않고 승객들이 알아서 나갔다. 키스키선 승강장은 역 건물에서 가장 멀어서 구름 다리를 건너간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키스키선은 좌측에서 꺾여서 들어간다.
이미 내가 탈 열차는 승강장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차내의 보온을 위하여 출입문이 닫혀 있었다. 문 옆의 스위치를 누르자 문이 열리고 나는 열차 내로 들어갔다. 차내에는 몇 명의 승객들이 있었다. 키스키선에서 운행되는 열차는 임시열차인 오쿠이즈모오로치[奥出雲おろち]호를 제외하고는 모두 키하 120系 디젤차이다.
키하 120系는 JR서일본에서 로컬선의 경영 개선 및 서비스 향상을 위하여 도입한 디젤차이다. 1992년부터 투입되기 시작하였으며 JR서일본의 표준형 디젤차이다. 차량의 길이가 15.8m로 짧고 원맨(ワンマン) 운전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양운전대이므로 1량으로도 운행이 가능하다. JR큐슈의 키하 125系나 큐슈의 사철인 마츠우라철도(松浦鉄道), 타카치호철도(高千穂鉄道), 쿠마가와철도(くま川鉄道)의 디젤차량과 같은 사양이다. 화장실은 설치되어 있지 않고 출입문은 버스형인 폴더식이다. 초기에는 니가타철공소에서 생산되었지만 후기에는 JR서일본에서 라이센스를 받아 생산되었다. 200번대와 300번대는 세미크로스시트로 되어 있고 0번대는 롱시트만으로 되어 있다. 현재 JR서일본의 로컬선 중 비전철화 구간을 중심으로 운행되고 있다.
열차 출발 시각이 임박하자 운전사가 들어왔다. 그런데 원맨(ワンマン)임에도 불구하고 한 명 더 와서 차량 뒤쪽으로 갔다. 승객 한 명이 늦게 와서 출발이 조금 늦어졌다. 대도시라면 승객이 뛰어와도 비정하게 출발할 것인데....... 시골의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열차는 천천히 출발하여 키스키선으로 들어섰다. 오른쪽으로 산인본선이 멀어진다.
'철도 이야기 > 다른 나라의 철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4년 1월 일본 여행 - 이즈모사카네[出雲坂根]역의 삼단 스위치백 (0) | 2009.12.25 |
---|---|
2004년 1월 일본 여행 - 계속되는 오르막의 키스키선[木次線] (0) | 2009.12.25 |
2004년 1월 일본 여행 - 하카타[博多]역의 다양한 열차들 (0) | 2009.12.25 |
2004년 1월 일본 여행 - 바다를 따라 달리는 지하철 (0) | 2009.12.25 |
유레일패스(Eurail Pass) 기념품으로 받은 숙어집(Phrase Book) (0) | 2009.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