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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12월 23일 한국철도기술연구원(Korea Railroad Research Institute, http://www.krri.re.kr )에서 개발하고 있는 한국형 복합소재 틸팅열차(한빛 200) 시승에 갔습니다. 전문적인 내용은 저의 능력 밖이므로 사진을 중심으로 느낀 내용을 바탕으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교통수단과는 달리 노선이 고정된 철도에서는 곡선 구간을 만나면 캔트(cant)라고 하여 선로를 경사지게 만들어서 원심력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으나 고속으로 달리는 경우에는 한계가 있어서 속도를 줄여서 지나가야 한다. 틸팅 열차(tilting train)에서는 곡선 구간에서 차량을 기울여서 속도를 높이게 된다. 자전거를 타고 곡선을 돌 때 몸을 기울이면 바로 세울 때보다 속도를 높여서 갈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그렇지만 틸팅 열차는 차량이 많이 기울어지므로 승차감이 떨어지고 심한 경우 멀미가 나기도 한다. 또한 차량이 정확하게 기울어져야 하므로 차량 단가가 비싸지므로 현재 틸팅 열차가 운행하는 나라에서는 등급이 높은 열차에만 적용하고 있으며 틸팅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는 곡선이 많은 노선에 투입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제야 틸팅 열차를 개발하고 있지만 이미 외국에서는 상용화되어서 운행하고 있다. 유럽과 일본에서는 1960년대에 개발을 시작하여 1970년대부터 상용화되기 시작하여 1990년대에는 유럽과 일본의 많은 노선에서 차량이 투입되었다. 처음에는 틸팅 열차는 차량의 무게가 상대적으로 가벼운 전동차였지만 1989년에는 일본에서 틸팅이 되는 디젤동차를 개발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연료가 새서 실패를 하였지만 틸팅 기능이 있는 디젤동차 개발을 시도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현재 유럽 14개국에서 틸팅 차량이 운행하고 있으며 유럽 이외에는 일본, 미국, 타이완, 중국, 호주에서 운행하고 있다. 유럽 이외에는 일본에서 틸팅 차량이 많이 다니고 있어서 우리나라 철도팬들에게도 틸팅 차량이 낯설지 않다. 제가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만난 틸팅 차량을 모아 보았다.

 


   이렇게 많은 나라에서 실제 운행하고 있는 틸팅 열차를 이제야 우리나라에서 개발한다는 건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프랑스로부터 TGV 기술을 도입하여 KTX를 운행하듯이 틸팅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에서 도입하면 더 빠른 시간에 상용화가 가능하다. 물론 이렇게 된 이유에는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겠다.


   우리나라에서 개발하고 있는 틸팅 열차에 대하여 의구심을 가지고 있을 때에 틸팅 열차 시승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경부선보다도 더 선형이 좋다는 호남선을 시운전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한 번 타보기로 하였다.

 


   틸팅열차 시승이 시작되는 서대전역에 도착하였다. 흐리고 약간 추운 날씨였다. 관계자와 함께 시승을 하는 동호회 회원들을 만나서 서대전역 승강장으로 내려갔다.

 

 


   잠시 후 차량 디자인이 기존 열차와는 다른 한빛 200 전동차가 들어왔다. 모두 6량 편성의 전동차였다. 하이브리드 복합 차체를 사용하여 차량 외관의 느낌은 약간 투박하고 광택이 적게 느껴졌다. 선두차는 유선형으로 되어 있는데 실물을 보니 독일철도(Deutsche Bahn, http://www.db.de )의 이체에테(ICE-T) 전동차와 비슷하게 생겼다. 독일의 고속철도 차량이지만 최고속도는 230km/h로 느린 편이고 독일과 주변의 국가인 스위스(Switzerland) 또는 오스트리아(Austria)를 연결하는 노선에서 운행하고 있다.


   이 차량은 시험용 열차이다. 실제 승객을 태우고 다닐 때에는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차내를 살펴보았다. 6량 중에서 운전실이 있는 양끝의 차량은 특실이고 나머지 4량은 일반실인데 각종 계측 기계가 설치되어 있는 차량에는 좌석이 없고 대신에 컴퓨터와 각종 기자재가 있다.

 


   일반실은 2X2로 좌석이 배열되어 있고 팔걸이에는 이어폰 단자가 설치되어 있다. KTX처럼 밑판이 움직이는 리클라이닝 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며 테이블은 등판에서 꺼내게 되어 있다. 그렇지만 좌석은 방향 전환이 가능하다. 좌석 위의 짐칸은 항공기처럼 수납식으로 되어 있다.

 


   특실은 2X1로 좌석이 배열되어 있고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어서 방송을 비롯하여 전후방 전망을 볼 수 있다. 게임기를 연결할 수 있는 단자도 있다. 차내에서는 무선인터넷 신호가 잡힌다. 콘센트는 출입문 부근에만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일본과 유럽에는 콘센트가 많이 설치되어 있는 열차를 보기도 하였고 무선인터넷을 차내에서 사용해 본 경험이 있었는데 열차 안에서 시간을 보내기에는 최적이었다. 독일에서는 차내에서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는 직장인들도 많이 보았다. 좌석의 모니터보다는 노트북을 사용하기에 편리하도록 콘센트를 갖추는 게 더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독일의 이체에(ICE)의 1등석에 이와 비슷하게 좌석에 모니터를 갖추고 있다.

 


   운전실은 전형적인 1인 승무에 대응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운전실에도 모니터가 있어서 전후방을 볼 수 있지만 창문이 너무 작았고 옆을 볼 수 있는 창문이 작았다. 아무리 첨단 장비가 나온다고 하여도 눈으로 보는 걸 따라가기 힘들다. 양산차가 나온다면 운전사가 전후좌우 확인하기 좋도록 커다란 창문을 달았으면 한다.


   외국에서 타 본 틸팅 열차는 계속하여 틸팅이 작동하여 운행한다. 나라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처음 타면 멀미가 나고 정신이 없다. 틸팅되는 각도가 크고(즉 많이 기울어짐) 곡선이 많은 노선을 운행하면 좌우로 정신없이 기울어져서 좌석에 앉아있는 건 별 문제가 없지만 차내에서 오가기가 힘들 정도였다. 특히 노르웨이에서 탄 NSB BM73 차량은 역방향으로 오랫동안 앉아있으니 멀미가 나서 승차감이 좋지 못하였다.


   이번 틸팅 열차 시승에서는 승차감을 평가할 수 없었다. 시승한 서대전에서 송정리까지의 180.0km 구간 중에서 3군데만 틸팅 열차 시험을 할 수 있어서 고속으로 곡선을 통과하였고 나머지 구간은 일반 열차와 마찬가지로 운행하였다. 다만 전동차여서 KTX나 기존선의 새마을호나 무궁화호보다는 훨씬 가속도가 높았다. 출발해서 1분 만에 110km/h까지 속도를 높였다.


   제대로 된 틸팅 열차 시험이라면 운행하는 전구간에서 틸팅을 사용하여 성능을 평가하는 게 맞다. 그렇지만 시험 구간인 호남선은 다른 열차도 운행하므로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 있다. 부처간의 협력을 통하여 제대로 시험 운전을 하였으면 한다.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실제 틸팅 열차를 운행하기 위해서는 철도 운영 및 관리하는 기관에서도 관련되는 내용을 잘 알 필요가 있지 않을까?


   또한 틸팅 열차는 곡선이 많은 노선에서 시간 단축 효과가 높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선형이 좋다는 호남선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KTX가 없어서 고속 운전이 힘든 중앙선이나 태백선에서 시험 운전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런 노선은 단선이어서 열차 교행 등의 시운전을 방해하는 요건이 있겠지만 국민들의 철도 이용 편의를 위하여 서로 양보한다면 충분히 시운전이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일본의 토카이도산요신칸선[東海道·山陽新幹線]에는 틸팅이 되는 신칸선 전동차인 N700系가 2007년부터 운행하고 있다. 토카이도신칸선 구간은 1시간당 최고 12대의 열차가 운행되고 있어서 3~5분 간격으로 다닌다. 이런 구간에서 어떻게 시험 운전을 하였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시험 운행을 한 틸팅 열차는 서대전역에서 익산역까지는 53분이 소요되어서 새마을호와 비슷한 시간이 걸렸고 익산역에서 송정리역까지는 60분이 소요되어서 중간에 3개역(김제, 정읍, 장성)을 정차하는 새마을호와 같은 시간이 걸렸다. 열차 간의 간격 유지를 위하여 서행하였던 구간이 있어서 속도가 더 빠른지는 알 수 없었다.

 


   이렇게 시승을 마치고 나니 아직은 우리나라 틸팅 열차가 부족한 면이 많이 보였다. 기술 개발을 위하여 많은 분들이 노력을 하고 있는데 찬물을 끼얹는 것 같이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발전을 위한 충고로 생각해 주셨으면 한다. 또한 이 틸팅 열차 개발은 상품으로 하면 아직 만들고 있는 중이고 학생으로 보면 시험 공부 중인 상태이다. 완전하게 승객을 수송하기 위하여 양산차가 생산될 때에는 더 나은 모습으로 나올 걸로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철도 기술의 최정점인 한빛 200 시승 기회를 주신 한국철도기술개발원에 감사를 드리고 열심히 연구하셔서 해외에서도 자랑할 수 있는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는 훌륭한 열차를 개발해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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