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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봉역에서 광곡역(廣谷驛)까지는 가볍게 걸어갔다. 거리는 3.9km이고 내리막이 이어지기 때문에 큰 부담이 없다. 도로 역시 차량이 가끔씩 지나가서 한산하였다. 차가운 바람이 강하게 불지만 이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하였다.
광곡리로 가기 위해서는 낮은 언덕 사이로 지나가야 하므로 급경사와 급커브가 있어서 최고속도는 65km/h로 제한되어 있다. 전라남도의 경전선 구간에도 이런 제약이 많이 있다.
광곡리에는 노동면사무소가 있다. 광곡역은 현재 정차하는 열차가 없는데 면사무소 소재지라는 게 좀 의외였다. 정작 면사무소도 없는 명봉역은 열차가 정차하고 있다. 물론 열차의 정차 여부는 그 지역의 행정적인 면보다는 승하차하는 여객 수에 의해서만 좌우되기 때문에 중요한 요소는 아니지만.
언덕과 보성강 사이의 좁은 땅에 있는 광곡리는 도로의 폭도 좁다. 포장은 잘 되어있지만 반대편에서 오는 차량을 살펴보고 넓은 장소에서 비켜가야 한다. 좁은 도로와는 달리 보성강의 유역은 넓다.
좁은 땅에 마을이 있어서 광곡역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승강장 양쪽 끝에 있는 계단이 전부이다. 그래도 승강장 아래의 벽에는 화려하게 그림을 그려 놓았다. 그린지 꽤 오래되었는지 아니면 열차가 정차하지 않으면서 관리가 되지 않은지 좀 색이 바랬다.
좁은 마을 사이를 지나가므로 철길 역시 반경 300m에 불과한 급곡선에 경사까지 있다. 그런 사정 때문인지 광곡역은 명봉역보다도 늦은 1959년에 문을 열었다. 선로가 분기할 수 공간도 없으니 선로 옆의 승강장이 전부이다.
승강장 반대편에는 타이어를 이용하여 흙이 무너지는 걸 막아 놓았는데 타이어를 노란색과 흰색으로 칠해 놓아서 경고 표시 같기도 하고 눈에도 잘 들어온다. 타이어 사이에는 작은 다리를 만들어서 언덕으로 올라갈 수 있게 해 놓았다.
계단 위에는 죽천정(竹川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죽천정은 문강공(文康公) 박광전(朴光前)을 기리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박광전은 1526년 보성에서 태어나서 이퇴계로부터 성리학을 공부하고 임진왜란 때에는 아들과 함께 구국의병에 앞장서다가 1597년 정유재란 때에 사망하였다. 조선 조정에서는 '문강공'이라는 시호(諡號)를 내렸다. 정자는 1948년에 호남 5현을 숭모하는 각지의 유림과 민관이 협찬하여 새워졌으며 박광전의 아호를 따서 죽전정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다른 분들의 답사기에는 철조망으로 닫혀 있다고 해 놓았지만 내가 방문하였을 때에는 문이 열려 있었다. 더운 여름이라면 보성강과 지나가는 기차를 보면서 쉬면 시가 한 수 절로 나올만한 장소 같다.
광곡역은 2011년 10월 5일부터 여객 열차가 정차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방문하였을 때에는 3개월이 조금 지났지만 이정표는 이미 제거되어 있었다. 요즈음 설치되는 이정표는 다른 용도가 많은 모양이다. 나무로 만든 이정표가 아직 건재한 경상남도에 있는 경전선 역들과는 대조가 된다. 그래도 간이역에 최신 이정표에 타고 내리는 승객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거울까지 설치하여 놓았다. 도시철도에서는 거울이 흔하지만 우리나라의 간이역에서는 처음 보았다. 이웃 일본의 경우에는 간이역이라고 하더라도 차장 없이 운전사만 타는 일인승무(One Man, ワンマン) 열차가 많아서 거울이 설치되어 있다.
광곡역은 승강장 가운데에 있는 작은 건물이 전부이고 따로 역 건물을 갖추고 있지 않다. 이 작은 건물의 창문에는 여객 열차가 정차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과거에는 시각표가 건물 벽에 붙어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하지만 버리지는 않고 건물 안에 그대로 있었다. 광곡역에는 하루에 2회만 무궁화호가 정차하고 있었다. 아침에 광주로 가서 오후에 되돌아오는 일정이 아니라면 기차 이용은 어려워진 상황이었다. 게다가 군청이 있는 보성과는 버스로 겨우 10분 밖에 걸리지 않고 명봉역과는 달리 보성을 오가는 농어촌버스는 하루에 14.5왕복이 운행하고 있다.
광곡역의 작은 건물은 비어 있고 들어갈 수 있었다. 과거 매표소 역할을 하였던 창구는 나무판으로 막아 놓았고 사무실로 쓰였던 공간에는 이전 시각표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기차가 멈추지 않으니 버스를 타야 보성으로 갈 수 있다. 좁은 도로이지만 농어촌버스도 운행하고 있고 광곡역 바로 앞에 정류장이 있다. 그나마 기차는 바람을 피하면서 기다릴 수 있지만 버스정류장에는 아무 것도 없어서 찬 바람을 그대로 맞으면서 기다려야 한다. 버스는 예정 시각보다 일찍 지나갈 수 있기에 적어도 5분 전에 나와서 기다려야 한다. 참고로 보성군의 농어촌버스 시각표는 보성군청 홈페이지(관련 글 보기)에 잘 나와 있다.
버스정류장에서 보니 마을에는 아직도 나무를 연료로 사용하는지 집집마다 쌓아놓았다. 석유 가격이 비싸서 대체를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든다. 어쩌면 간이역이라는 것도 과거 다른 교통 수단이 없었을 때에 기차를 세우기 위한 과거의 유물이 아닐까?
* 방문일 : 2012년 1월 23일
작성일 : 2012년 3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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