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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원선 백마고지역 근처에는 대마리 마을이 있다. 오대미(五大美) 마을이라고도 하며 http://odaemi.go2vil.org 라는 홈페이지도 갖추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두루미평화관이라고 하는 마을회관이 있다. 마을회관이기도 하지만 숙박도 가능하다. 벽돌로 지어졌지만 옛 노동당사의 건물 구조를 본떠서 만들었고 옥상에 올라가면 대마리는 물론 백마고지역과 백마고지를 볼 수 있다.

 


   두루미평화관 앞에는 상허(尙虛) 이태준(李泰俊) 문학비와 함께 흉상이 설치되어 있다. 이태준은 이곳 철원에서 태어난 소설가로 일제 강점기에 활동을 하였으며 이후로는 월북을 하여서 행적은 아직도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북한 공산군과의 격전지였던 철원이지만 마을회관은 노동당사를 모방하여 만들고 월북한 소설가의 기념비와 흉상이 있는 건 좀 아이러니한 모습이지만 어떻든 언젠가는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소망의 표현이 아닐까? 그런 이유로 백마고지역의 명칭으로 이태준역도 하나의 고려 대상이었다.

 


   대마리는 우리나라 곳곳에 흔한 작은 시골 마을이지만 무언가 다른 느낌이 든다. 매우 오래된 집은 없으며 집들이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으며 도로와 집들을 계획하여 만들었음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대마리 마을에는 개척비가 있다. 대마리 마을은 백마고지전투로 폐허가 되어 버렸고 불발탄과 지뢰가 많이 남아 있어서 한국전쟁이 끝나고 나서 한동안은 출입이 통제되었다. 1967년 150세대가 가입주를 시작하면서 대마리 마을이 개척되기 시작하였다. 집을 짓고 논을 조성하면서 1968년에 정식 입주가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15년 동안에 나무와 풀이 마음대로 자란 상태여서 논으로 만들기 위하여 이들을 제거해야 했는데 지뢰나 불발탄에 의한 사고도 많아서 마을에 들어온 사람의 10% 정도가 희생되었다. 그런 관계로 해마다 8월 30일에 위령제를 지내고 휴전선까지 마라톤 경기를 하고 있다. 대마리는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목숨을 담보로 조성된 마을인 셈이다. 힘들게 만든 터전이기에 마을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도 크기에 백마고지역까지의 연장을 오랜 기간 바랬고 직원은 없지만 자원봉사와 특산품 판매를 하면서 활성화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 않을까?

 


   마을 중앙에는 공터가 있고 버스정류장이 있다. 물론 마을에는 2군데 더 정류장이 있기는 하다. 버스정류장에는 매점이 있어서 간단한 물품을 구입할 수 있다. 버스정류장에는 버스 시각표는 물론 백마고지역과 신탄리역에서 접속되는 통근열차 시각표까지 보기 좋게 나와 있다. 우리나라의 일부 역에는 역이 생겨도 연계 교통편에 대한 안내가 전혀 없는 경우도 많은데 백마고지역은 오랜 기간 숙원이었기에 개통되자마자 변경된 시각표를 붙여 놓았다.

 


   아쉬운 점은 대마리 마을과 백마고지역 사이는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고 백마고지역은 대마리 방면으로는 출구가 없고 국도 방면으로만 있어서 우회를 해야 한다. 마을을 걷다 보면 나무로 된 버스정류장이 있다. 철원은 여름에는 시원한 편이고 평지가 많아서 도보로 둘러보는 것도 괜찮다.

 


   마을에서 나오면 새로 만든 경원선 철길이 보인다. 단선이지만 요즈음 만든 다른 노선처럼 고가가 있어서 교각 위에 철길이 있다.

 


   백마고지역은 무인역이어서 승차권은 차장으로부터 구입해야 하지만 미리 구입하여 놓았다.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지만 목숨을 걸고 개척한 대마리를 떠났다. 목숨을 걸었기에 그만큼 주민들에게는 소중한 공간이 아닐까?

 

 

* 방문일 : 2012년 11월 24일
  작성일 : 2013년 3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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