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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에서도 공산정권이 지배하고 독재자 호자(Hoxha)가 외국과의 교역을 거부하는 고립정책으로 오랫동안 닫혀 있었던 알바니아(Shqipёria, Albania)는 1990년이 넘어서야 독재자가 사망하고 공산정권이 무너지면서 외국인의 출입이 허용되고 개방되었다.

 

   공산정권인 동안 북한처럼 외부와 단절되면서 경제는 파탄 상태였고 지금은 외국의 투자를 받아서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공산정권 지배 시대인 1962년에 이 나라에도 철도가 개통되어 나라 구석구석을 연결하지는 않지만 수도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주요 도시 및 항구를 연결하고 있다. 그렇지만 어려운 경제 사정에 철길의 유지 및 보수가 잘 되지 않아서 상태는 좋지 못하다. 알바니아는 공산정권은 무너졌지만 철도는 계속하여 정부 기관인 알바니아철도(Hekurudha Shqiptarë, HSH, Albanian Railways)에서 운영하고 있다.

 

   알바니아의 서쪽에 있는 오리드 호수(Lake Ohrid) 옆에 위치한 포그라데츠(Pogradec)에서 처음으로 기차를 타러 갔다. 역은 마을에서 약 4km 정도 떨어져 있다.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지만 시간 여유가 있으니 호수를 따라서 걸어갔다. 호수를 경계로 국경이어서 호수 건너편은 마케도니아(Makeдoниja, Macedonia)이다.

 

 

   호수에는 토요일을 맞아서 온 가족이 나와서 카페트를 호수에서 빨아서 말리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또한 도로에는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를 팔고 있는데 차가 지나가면 물고기를 흔들면서 보여준다. 외국인 관광객이 적고 게다가 그 중에서도 흔하지 않은 한국인인 내가 지나가니 사진을 찍어달라고 해서 찍었는데 손가락 모양이 장난이 아니다. 오랫동안 닫혀 있다가 문을 연 사이에 자란 어린이들이라서 외국인은 이들에게는 호기심의 대상인 동시에 좋은 장난감이다. 다른 유럽의 나라에서는 동유럽이라고 해도 상상하기 어렵지만.

 

 

   1시간 가까이 걸어서 포그라데츠역에 도착하였다. 과거에는 선로가 많이 있었지만 현재는 선로 2선이 남아 있고 승강장은 1면 1선이다. 오래되어 보이는 역 건물이 있고 그 옆에 무언가 새로 건물을 짓고 있다.

 

 

   역명판은 오래 전에 나름대로 산으로 둘러싸인 호수에서 달리는 기차의 모습을 그렸지만 오래되어서 겨우 그림을 알아볼 수 있다.

 

 

   주변에 약간 높은 장소가 있어서 역 구내를 볼 수 있었다. 역시 과거에 있던 선로 흔적이 있고 역으로 향하지 않고 왼쪽으로 빠지는 화물 지선이 있었다. 현재는 근처 공장이 문을 닫아서 폐허로 남아 있어서 지선은 없어지고 선로 2선만이 남았다. 2선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나라와 동일하다. 디젤기관차가 객차를 견인하여 운행하므로 종점인 이 역에서 디젤기관차를 떼어서 반대 방향에 붙여 되돌아가기 위함이다.

 

 

   하루에 한 번만 운행되는 열차의 출발에 맞추어서 개방되는 대합실은 의자와 팬이 있다. 노점상이 있어서 간단한 과자와 음료수를 구입할 수 있다. 대합실 한쪽에는 창문이 2개 있는데 매표소이다. 열차 시각표는 없고 운임만 나와 있다. 이 나라는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꽤 많지만 목적지와 손가락으로 하나를 표시하면 승차권 구입은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직원이 목적지를 종이에 써서 한 번 확인한 후에 승차권을 준다. 목적지인 두레스(Durrёs)까지 가는데 운임이 250레크(약 3,250원)이다. 거리(153km)를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수도권전철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우리나라 대중 교통 요금이 경제력에 비하여 매우 저렴하다.

 

  

   승강장에서 승객들이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타려는 열차는 알바니아의 수도인 티라나(Tirana)에서 와서 바로 되돌아가는 형식으로 운행하는데 오늘 따라서 열차가 지연되고 있다. 다른 나라 같으면 버스 대행 수송을 해서 여기까지 열차가 오지 않고 중간에서 되돌아가기도 하는데 이 나라는 그런 일은 없다. (아마도 디젤기관차를 반대 방향에 붙일 수 있게 하는 회송 선로가 없어서 그렇게 할 수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이틀 전인 목요일에 보았을 때에는 디젤기관차에 객차가 2량 연결되어 있었는데 주말이라고 객차가 늘어나서 3량 편성이다. 도착한 열차는 바로 디젤기관차를 반대 방향으로 붙이고 되돌아갈 준비를 한다. 디젤기관차는 체코슬로바키아(Czechoslovakia, 지금은 두 나라로 분리되었으니 나누어지기 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에서 제작된 T669이다. 현재 알바니아에서 운행하고 있는 열차는 대부분 이 디젤기관차를 사용하고 있다.

 

  

   현재 알바니아의 객차는 모두 유럽 다른 국가에서 쓰던 차량을 구입하여 쓰고 있다. 체코, 독일, 오스트리아 차량이 있는데 이번에 타는 차량은 독일 차량이다. 1974년에 동독철도(DR)에서 제작되어서 2002년 이후까지 독일에서 사용되었다. 독일어로 된 안내문이 차량 내부에 그대로 남아 있다. 승차권 없으면 벌금 40유로라고 적혀 있다(그러나 알바니아 철도에서 승차권이 없으면 벌금이 500레크(Lek)로 6,500원 정도이다). 알바니아의 사정상 차량 관리는 좋지 못하여 창문이 깨져 있거나 없고 조명은 켜지지만 냉난방은 가동되지 않는다. 출입문도 자동으로 닫히지 않는다. 객차의 최고속도는 140km/h이지만 알바니아에서는 40~50km/h 정도가 최고속도인 것 같다. 그나마 이게 알바니아에서 가장 좋은 객차이다.

 

 

   나는 이 열차를 타고 알바니아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인 두레스(Durrёs)까지 갔다. 거리는 153km이고 소요시간은 5시간 30분이다. 표정속도가 30km/h도 채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정차역이 많은 건 아니다. 평균적으로 20~30분 정도마다 역에 정차한다.

 

   철길은 제법 경치가 좋고 천천히 가고 창문이 열리니 덕분에 감상하기도 좋다. 알바니아에는 창문 있는 좌석이 좋은 좌석이다. 시원하고 밖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리드 호수를 따라서 달리고 호수에서 벗어나서는 산악 구간을 지난다. 산 사이의 고가교를 지날 때마다 멋진 전망이 펼쳐진다.

 

 

   포그라덱에서는 25분 늦게 출발하였지만 나의 목적지인 두레스에는 4분 늦게 도착하였다. 중간에 정차역에서 짧게 정차하고 속도를 좀 내어 본 모양이다.

 

   알바니아에서도 규모가 큰 역인 두레스역은 1면 2선의 승강장이 있고 선로 끝이 막혀 있다. 그런 관계로 들어온 열차는 방향을 바꾸어서 나가야 한다. 여기까지 객차를 끌고 온 디젤기관차는 분리되고 반대 방향에 다른 디젤기관차가 연결되어 수도인 티라나(Tirana)로 향한다. 디젤기관차 사진을 찍고 있으니 주변 직원들이 기관사에게 포즈를 잡아보라고 한다.

 

 

   두레스 시내에서 가까운 두레스역은 역 건물이 조금 더 크다. 역에는 이곳 분위기와 다른 그림이 있는데 언제면 저런 열차가 다닐 수 있을까?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 가입 신청을 얼마 전에 했으니 승인이 되면 의외로 빨라질 수도 있겠다. 물론 그 전에 이 나라 국민들의 기본 의식이 바뀌어야 겠지만(유리창을 누가 깨뜨렸느냐를 생각하면).

 

 

   역 건물 앞에는 간단하게 시각표가 있다. 수도인 티라나(Tirana)를 오가는 열차가 압도적으로 많다. 물론 수도를 오가는 구간도 36km를 1시간에 가니 그렇게 빠르지는 않다. 다른 구간은 하루에 1~2회에 불과하다.

 

 

   두레스역은 알바니아의 다른 역과는 달리 역 광장이 있다. 역 광장에는 티라나를 비롯한 알바니아 주요 지역 및 주변 국가 사이를 오가는 버스가 출발한다. 두레스에서는 이탈리아(Italy)를 연결하는 배가 있어서 승선권을 판매하는 여행사도 밀집되어 있다.

 

 

   알바니아철도, 앞으로 얼마나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유럽이라고는 전혀 믿어지지 않는 특이한 체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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