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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조금은 성격이 다른 듯한 제목인데요, 글을 읽어보시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겁니다. 시코쿠의 평범한 사람들의 인심이 느껴집니다.

 

 

 

 


16. 2월 14일 - 일본 아줌마와 자몽

 

   이요사이죠[伊予西条]를 출발한지 15분쯤 지나자 뉴가와[壬生川]역에 도착하였다. 이 역에서는 특급열차와 바뀌고 서로 교행하기 때문에 13분간 정차한다. 열차에서 나와 물을 뜨고 스탬프를 받았다. 2월임에도 날씨가 매우 따뜻하였다. 바람이 좀 많이 부는 게 흠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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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은 역명과 도시명이 다르다. 우리나라로 보면 대천역이 있지만 대천시가 아닌 보령시에 있는 것처럼. 뉴가와는 토요시[東予市]의 중심역명이다. 원래 뉴가와라는 지명이 과거에 쓰였지만 마을끼리 합쳐지면서 토요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비록 역명은 뉴가와가 남아있지만 항구나 다른 시설은 토요를 쓰고 있다. 칸사이 지역에서 페리로 갈 때에는 토요코[東予巷]에서 내려야한다. 이 역의 스탬프로는 나오는 사진이 무언지는 한번에 알 수가 없다. 해산물인데 가오리인 듯한데. 이것은 투구게(Helmet crab)이다. 토요는 투구게의 산지로 유명하다. 투구게는 삼엽충이라는 고대의 지표생물에서 진화한 것인데 여러 용도로 쓰인다고 한다.

 


   날씨는 따뜻하지만 하늘은 이상한 기미를 보인다. 바람이 조금씩 세게 불고 햇빛은 비치지 않고 구름이 많다. 시코쿠의 날씨가 눈은 산간 지방 이외에는 오지 않는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그마한 우산을 챙겨오기는 하였으나 비가 오는 날씨는 여행에는 좋은 조건은 못된다.

 

   열차는 계속 평지를 달리다가 갑자기 고가로 올라간다. 분기되어서 역에 도착하는데 이마바리[今治]역이다. 이 역에서는 특급 열차와의 교행 때문에 13분간 정차한다. 승객들은 대부분 내리고 다시 많은 사람들이 탄다. 이마바리역은 전형적인 고가역이다. 우리나라는 지하철이나 수도권 전철 이외에는 보기가 힘들지만 일본에서는 소규모 도시에서는 쉽게 고가역을 볼 수 있다. 역 3층 정도에 승강장이 있고 아래로는 역 건물과 상업 시설이 있다. 우리의 경우 서울 지하철 2호선의 지상 구간 정도로 생각하면 거의 같다. 주변 노선은 고가로 만들어 놓았으므로 철길로 인한 도시 양분이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철도 차량의 소음이 너무 크다 보니 고가화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일본 철도 차량은 소음이 크지 않으므로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고가화를 하는 곳이 많다. 내일 방문할 코치[高知]도 고가화 공사를 하고 있다.

 

   이미바리를 출발하면 약간의 커브길이다. 도시 내라서 그런지 열차는 천천히 간다. 얼마 안 가서 도시를 벗어나자 고가에서 내려온다. 논과 밭을 따라 가는 평범한 풍경이 다시 펼쳐진다. 키쿠마[菊間]역을 지나자 다시 바다를 따라 간다. 이곳도 도로가 바다에 더 가깝게 있다. 앞의 장소보다 나쁜 점이라면 바다 반대쪽인 육지 방향이 약간은 높은 산인지라 중간중간에 터널을 많이 지난다. 사진을 찍기에는 안 좋은데 목표를 맞추어서 스위치를 누르려고 하면 터널에 들어가니 이거 난감하다. 사진 129와 같이 바로 앞에 터널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하나를 찍고자 난리 법석을 떨다가 열차는 오오우라[大浦]역에 도착하였다. 이 역은 약간 육지로 들어간 위치에 있다. 열차 뒤로 바다가 보이고 앞으로 보이는 철길은 터널이다. 무인역이기는 하지만 교행 때문에 3분간 정차한다. 나는 잠시 휴식을 가지기 위하여 내 자리에 앉아 노트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나의 옆에 앉아계신 아주머니가 유심히 내가 적는 걸 보시더니 손가락으로 내 노트를 가리키시면서 “한글”이라고 하셨다. 나는 순간적으로 놀랐다. 여기는 우리나라가 아니고 일본이고 게다가 시코쿠는 우리나라 사람의 방문이 뜸한 곳이다. 게다가 이런 보통열차에서. 그리고는 가방을 뒤적이시더니 빵이 든 봉지 2개를 나에게 주셨다. 밥값이 비싼 일본인지라 나는 연신 고맙다고 하였다. 먹을 것도 받았는데 말동무라도 되어 드려야 되는데 불행히도 나는 일본어를 할 줄 모른다. 열차는 교행 때문에 역에 정차하여 있고 밖에는 이상하게 바람이 강하게 분다. 1량 밖에 안 되는 이 열차는 바람 때문에 흔들흔들 적막감이 감돌고, 밖에는 온통 자몽 나무들이 잔뜩 있다. 자몽도 바람의 힘을 견디지 못하는지 하나 둘씩 떨어져서 나무 밑에는 떨어진 자몽이 수십개 널려 있다. 밖에 바람이 많이 불어서 자몽이 많이 떨어졌다는 걸 손짓 발짓으로 하니 이제는 가방에서 자몽을 하나 꺼내 주었다. 너무 감사하고 한편으로는 내가 해 줄 수 있는게 전혀 없어 미안하기까지 하였다.

 

   그 당시에는 경황이 없어서 이 일에 대하여 깊게 생각하지 못하였다. 우리나라에 돌아온 후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단 놀라운 건 강코쿠고[韓国語]라고 하지 않고 한글(ハングル)라고 했다는 점이다. 우리가 일본어(日本語)를 일본어라고 하지 니혼고라고 하지 않듯이 대부분은 ‘韓国語’라고 표시되지 ‘ハングル’로 적힌 건 보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최근에 와서 우리의 드라마가 일본에서의 인기가 높아지고 월드컵에서 우리 축구가 선전을 하면서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방송에서 밤 황금 시간에 한글 강좌를 하는가 하면 우리말로 적힌 물건이 편의점에서 팔리고 있다. 1월에 훼미리마트에 갔을 때에는 한쪽 코너에 우리말로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한국 제품이 훼미리마트에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또한 JR 시각표의 나리타익스프레스[成田エクスプレス] 차량 편성에도 일본어와 영어 그리고 한글 안내가 있다고 나와 있다. 어떻게 되었든 우리의 말과 글의 위상이 일본 내에서 높아졌다는 데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내에서는 영어에 밀려서 천대받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 일도 그 아줌마가 한국 드라마를 감상하면서 우리말과 글을 보고 들었는데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인 나를 실제 열차 안에서 보고 반가워서 빵과 과일을 주었다고 해석하고 싶다.

 

   열차는 어느덧 이요호죠[伊予北条]역에 도착하였다. 이 역부터는 원맨(ワンマン)이 아니다. 이요호죠역에서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엄청난 수로 탔다. 열차 앞의 운임표도 꺼지고 학생들 뒤로 차장도 승차하였다. 이러니 원맨으로 운행하는 건 무리가 있다. 나는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어야 하였다. 열차 내가 만원인지라 움직일 수도 없었고 학생들에 가려서 앞의 전망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이요호죠부터는 마츠야마[松山]의 통근권이다. 거의 30분 간격으로 보통열차가 운행되고 있다. 집들도 점점 많아지고 내리는 학생들도 있지만 타는 사람들도 많다. 코요다이[光洋台]를 지나서 잠시 바다의 모습이 보이지만 이내 다시 내륙으로 들어간다. 학생들은 여학생들이 많다. 이들은 열차 앞의 운전실 반대쪽을 완전히 점령하고 자기들끼리 웃고 떠든다. 운전기기들을 막 건드리지만 운전사는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같으면 운전 방해한다고 불호령이 내려졌을 것인데. 운전사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운전에만 집중하고 쳐다보지도 않는 듯 하다.

 

   선로 양 옆으로 높은 건물들이 많아지자 선로는 여러 개로 분기되고 열차는 드디어 종착역인 마츠야마[松山]역에 도착하였다. 마츠야마역은 이 지역의 중심역으로 많은 열차들이 도착하고 출발한다. 그렇지만 아직은 사람이 직접 하는 수동개찰구였다. 특이한 점은 다른 시코쿠의 큰 역들과 마찬가지로 여성 역무원이 담당하고 있었다. 2월이라 좀 추운지 두꺼운 코트를 입고 있었다. 개찰구를 통과하여 스탬프를 찍은 후 역 내에 있는 관광안내소에서 우리말로 된 안내 책자를 얻었다.

 

   마츠야마에서는 1시간 30분 정도의 여유 시간이 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마츠야마성[松山城]에 가 보기로 하였다. 오랜만에 전차도 한 번 타 보기로 하고. 마츠야마는 봇찬열차(坊っちゃん列車)로 잘 알려진 곳이니 구경도 한 번 하고. 마츠야마역 앞의 전차 타는 곳으로 향하였다.

 

 

 

 

 

   사실 별 건 아니지만 이런 조그마한 것들이 우리를 즐겁게 하고 여행에서의 활력소가 됩니다. 누군지 찾을 길도 없지만 열차 안에서 옆에 앉은 외국인(일본인 입장에서 보면)에게 빵과 과일 하나를 건네주는 그 인심은 친구들과 두고두고 이야기 하였답니다. 이번 학회에서 시작하여 여행 중에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는 못했지만(사실 일본어를 할 수 없는 엄청난 문제 때문에) 이야기한 사람들은 모두 친절하게 대해 주셔서 감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다음 편으로 '성 아래의 도시 마츠야마[松山]'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마츠야마의 명물인 봇찬열차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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