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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보가와역에서 조심스럽게 스탬프를 찍는 철도팬을 보았습니다.

 

 

 

 


21. 2월 15일 - 쿠보카와[窪川]역에서 만난 일본인 철도팬

 

   나는 일단 새로 방문하는 역에 가면 먼저 스탬프를 찍는다. 쿠보카와역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개표구를 나가서 바로 앞에 있는 걸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스탬프를 찍기 위하여 책상 앞에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철도팬님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내가 늦게 왔기 때문에 철도팬님이 찍기까지 기다려야 하였다. 그런데 철도팬님은 바로 스탬프를 찍는 게 아니었다. 가방에서 여러 물건들을 꺼내었다. 먼저 칫솔을 꺼내어서 스탬프에 묻어있는 잉크 찌꺼기를 조심스럽게 제거하였다. 전용 스탬프 잉크를 준비하여 여기에다가 스탬프 도장을 꾹 누른 후에 깨끗하고 전혀 구김이 없는 종이에 스탬프를 찍었다. 물론 한 번만 찍은 게 아니고 여러 개의 스탬프를 종이에 남겼다. 물론 스탬프를 찍은 종이는 접히지 않도록 플라스틱으로 된 폴더에 보관하였다. 스탬프를 위한 최상의 도구들을 가진 셈이었다. 나는 이걸 쉽게 수긍할 수 있었다.

 

   역에 따라서는 스탬프 안에 잉크가 있어서 종이에 대고 누르기만 하면 찍히는 스탬프를 비치한 곳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스탬프의 고무가 완전히 닳아서 찍어도 완전히 뭉개진 스탬프를 얻을 수 있다던지 잉크가 얼마 없던지 완전히 말라서 있는 힘을 다해서 최대한 스탬프에 잉크가 묻도록 하여도 보일듯 말듯 나오는 경우도 경험하였다. 지금까지 손에 꼽을 정도로 보았지만 역에서 스탬프가 없어졌다던지 도난 염려 때문에 종이를 주면 어디선가 찍어오는 경우보다야 훨씬 낫다.


   나는 정성스럽게 스탬프를 찍는 철도팬님 덕분에 쉽게 최상의 스탬프를 찍을 수 있었다. 또한 지금까지는 나의 수첩과 역에 비치된 메모지에만 스탬프를 찍었지만 이걸 좀 더 잘 보존하기 위해서 깨끗한 A4 용지에 스탬프를 찍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스탬프를 찍고 역 밖으로 나왔다. 지금은 2월이지만 이곳 시코쿠는 남쪽 지방이기 때문에 낮에는 매우 따뜻하다. 게다가 오늘은 구름 얼마 없이 햇빛이 따사롭게 비치고 있다. 하지만 주말이면 오가는 승객들로 붐비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쿠보카와역은 정말 한산하다. 역은 단층 건물인데다가 조명도 어두워서 분위기가 좋지 못하다. 밖과는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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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보카와역은 두 군데 있다. 내가 내린 JR의 역과 사철인 토사쿠로시오[土佐くろしお]철도의 역이다. 승강장은 토사쿠로시오철도의 보통열차만 따로 쓸 뿐 사실 역 내의 철로는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건물은 서로 다르다. 물론 환승을 위한 통로도 마련되어 있다. 토사쿠로시오철도의 역 건물은 JR역의 동쪽에 있다. 단층인 JR역과는 달리 커다란 녹색 지붕을 가진 2층 건물이다. 역 앞에는 이 회사에서 운영하는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토사쿠로시오철도는 이름에 있는 철도 이외에도 노선버스와 관광버스도 운영하고 있다. 대낮이라 그런지 이곳도 한산하였다.

 

   역 안의 분위기를 보기 위하여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안은 벽을 통나무로 만들어 놓았다. 창구에서 표를 사도록 되어 있었는데 열차가 출발할 시간이 아니어서인지 유리창을 닫아 놓았다. 대합실에는 조금 전에 JR역에서 본 매니아님이 있었다. 유리창을 열고 직원으로부터 스탬프를 받아놓았다. 나를 보자 먼저 찍으라는 손동작을 보여주었다. 앞의 JR역에서 내가 기다리도록 한게 미안해서일까? 먼저 찍으면서 매니아님에게 물어보았다. 철도팬이냐고 그러자 맞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더 이상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역에서 나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궁리하였다. 다음 열차를 타기까지는 약 1시간 30분의 여유가 있다. 안내판도 잘 나와 있는 걸로 보아서 역 주변에는 크게 볼게 없는 듯 하였다. 그렇다고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역에서 시간을 보내기는 아까왔다. 역에서 약 2km 떨어진 곳에 공원이 있다고 나와 있어서 그곳에서 휴식을 취한 후에 돌아오기로 하였다. 천천히 걸어갔다. 철도 교통 상으로는 요충지이기는 하지만 사실 쿠보카와는 시골이다. 집도 띄엄띄엄 있고 차들도 많이 다니지 않았다. 길은 2차선이지만 갓길이 꽤 넓은 편이라 걸어가는데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큰 장애가 있었으니 약간 오르막이었다. 동력이 있는 차도 아니고 걸어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갈 때에는 장애가 된다. 게다가 이정표에 있었던 공원은 보이지 않고. 마을을 한바퀴 도는 걸로 목표를 바꾸고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 중간에 사거리가 있었다. 이때에는 한바퀴 돈다는 뜻을 발휘하기 위하여 오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들어섰다. 얼마 안 가서 생각하지도 않았던 건물을 발견하게 된다.

 

   대형 마트였다. 시골이라 땅값이 싸서인지 단층으로 큰 규모였다. 일단 안으로 들어갔다. 오전 시간이지만 건물 안과 밖에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먼저 입구에 전화기가 있어서 가지고 있는 KT카드를 통하여 우리나라에 있는 친구와 전화를 하였다. KT카드를 쓰는 경우는 전화를 거는데 시간이 걸리지만 일본도 우리처럼 휴대전화가 보급되면서 공중전화가 찬밥 신세라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전화를 할 수 있다. 다행히 큰 일은 없었다. 실험실에서는 이미 내가 빨리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눈치를 채고 있었다. 처음에 비행기표를 바꾸면서 귀국하는 날이 하루 늦어졌기 때문에 그걸 알렸다.

 

   전화를 끊고 점심으로 먹을 음식을 사러 갔다. 일본의 대형마트는 우리와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두 나라가 비슷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굳이 들자면 일본의 경우에는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여러 종류로 다양하게 팔고 있고 우리보다는 판촉을 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적다. 가장 큰 차이라면 우리나라는 다시 물건을 찾아가면 동전이 나오는 코인락커가 있지만 일본에서는 아직도 그런게 설치된 곳을 보지 못하였다. 좋은 뜻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짐을 락커에 넣어버리고 쇼핑을 하니 홀가분하게 즐길 수 있으나 일본에서는 무거운 가방을 맨 상태로 다녀야 한다고 볼 수 있지만 실상은 나쁜 뜻인 우리나라에는 물건을 훔쳐가는 사람이 많다는 반증이 아닐까? 또한 여러 번 일본의 대형마트에서 쇼핑을 하면서 매장 안과 밖에 명확히 구분되지 않아서 당황한 적도 있었다.

 

   아침에는 밥을 먹었으니 점심은 기차 안에서 빵을 먹기로 하고 둘러보았다. 여러 종류의 식빵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빵을 정말 두껍게 썰어놓았다. 일본 사람들은 두꺼운 식빵을 좋아하는지. 가진 자금의 압박 때문에 두껍지만 값이 싼 식빵을 골랐다. 두꺼운 정도는 우리나라 일반 식빵의 2배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빵만으로는 영양도 부족하고 맛이 없으니 같이 먹을 치즈와 소세지도 샀다. 얼마 사지는 않았지만 같은 조건으로 우리나라에서 살 때보다는 돈이 훨씬 많이 든다. 게다가 지금은 엔화 강세이기 때문에 원화를 기본으로 하는 나로서는 물가 상승. (참고로 이글을 쓰는 시점인 2005년 4월은 1엔당 9.40원 정도이지만 여행을 간 2004년 2월에는 1엔당 11.18원이었다)

 

 

   이제 다시 역으로 되돌아갔다. 열차 시각을 맞추어야 한다. 역에 돌아오니 12시 50분이었다. 열차 출발까지는 약 13분이 남아있었다. 개표구를 통과하여 승강장에 가니 이미 내가 탈 열차는 들어와 있었다. 이틀 전에 타본 1000系 디젤차였다. 일단 차 안에 들어가 짐을 풀어놓고 반대편 승강장에 있는 열차로 갔다. 내가 가진 표로는 감히 탈 수 없는 특급열차이다. 그래서일까 차내의 좌석이 무척 편안하고 커 보였다. 나는 계속하여 뒤로 넘어가기는 커녕 롱시트에 앉아왔는데. 정차하고 있는 열차는 특급 난푸[南風] 3호였다. 4량 편성인데 가장 뒤의 1량 빼고는 앙팡맨열차였다. 특별한 일이 없다는 문을 닫고 출발하여야 할 건데 이 역에 계속 정차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의아해하였지만 금방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열차간의 교행 때문이었다. 아무리 틸팅 특급열차라지만 단선에서는 반대편 열차가 도착해야 갈 수 있다. 나중에 보니 이 열차는 쿠보카와역에서 보통열차 교행 때문에 10분간 정차하게 되어 있었다. 특이한 것은 운전사의 모습은 자세히 볼 수 없어 알 수 없지만 여성 차장이 타고 있었고 상의 칼라에 JR 뱃지를 달고 있었다. 이 열차는 토사쿠로시오철도 구간을 달리게 될 것인데 그래도 차장은 바뀌지 않고 그냥 타고 가나보다.

 

   와카이 방향에서 토사쿠로시오철도의 보통열차가 도착하자 내 예상대로 난푸호는 출입문을 닫고 출발하였다. 다시 열차로 되돌아왔다. 열차 내는 매우 한산하였다. 나 이외에는 겨우 1명이 타고 있었다. 열차는 토쿠시마선[徳島線]에서 다니는 1000系와는 달리 열차 외부에 앙팡맨 캐릭터가 붙어 있었다. 또한 화장실이 시범적으로 설치된 차량이다. JR시코쿠는 보통열차의 경우 단거리 이용객이 많기 때문에 신조차량에는 타카마츠 근교의 전동차를 제외하고는 화장실을 설치하지 않았다. 그러나 2003년 말부터 시범적으로 1000系 디젤차 3량부터 장애우 대응 화장실을 설치하였다. 내가 탄 차량이 그 3량 중의 하나였다.


   시간이 되자 열차는 엔진 소리를 높이며 쿠보카와를 출발하였다. 특급 열차로는 겨우 3시간 남짓이지만 보통열차로는 2배 이상의 시간이 요구되는 도산선[土讃線] 여행이 시작되었다.

 

 

 

 

 

   다음으로 '코치현[高知県] 남쪽을 따라 달리는 도산선[土讃線]'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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