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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북역(院北驛)은 군북역에서 3.6km 떨어져 있다. 걸어서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이다. 길은 하나밖에 없으므로 간단하지만 2차선 도로이고 차가 많이 다니고 인도가 따로 없다. 그래도 도로 주변으로는 푸른 논과 밭이 있고 멀리 산이 계속 이어진다. 멀리 경전선 복선전철화 공사를 하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새로 이설되는 철길은 고가에 있어서 기둥을 박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변수가 발생하였다. 구름이 짙게 끼여서 무언가 불안하다고 생각하였는데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 빗방울은 점점 굵어지더니 폭우로 바뀌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할 수 없이 주변에 있는 원두막에 대피하였다. 원두막에 있던 분들이 빨리 들어오라고 하셨다. 그렇지만 많은 비와 강한 바람으로 원두막 바닥도 비로 젖었고 결국 신발은 물로 차고 다 젖었다. 그래도 집에는 돌아가야 한다고 못쓰는 우산을 하나 준비하여 주셔서 비가 좀 약해졌을 때 원두막을 출발했다. 지도에서 찾아보니 그 원두막이 있던 장소는 덕대리였다. 덕대리 주민들의 친절에 감사의 인사를 다시 드린다.

 

 

   원북 마을에 도착하였지만 역은 어디있는지 찾을 수 없었다. 도로와 가깝게 경전선 철길이 지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행히도 원북역에 있는 정지 표시를 보고 역이 어디 있는지 찾았다. 도로에는 전혀 표시가 없고 농기구가 있는 창고에서 길을 건너서 골목으로 들어가면 된다. 약간 내리막이 이어지면서 바로 원북역 승강장이 나온다.

 

 

   원북역은 역 건물은 따로 없고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대합실만 하나 설치되어 있다. 그나마 이 역에서 가장 유지가 잘 되고 있는 공간이다. 새로 페인트를 칠하여 외부는 깨끗하고 창문도 멀쩡하고 최신 시각표를 붙여 놓았다. 대합실 밖에는 원북역이라는 역명판과 이 건물을 만들어서 기증한 박계도(朴季道) 씨의 이름이 적혀 있다. 원북역 자체가 경전선이 생겼을 때 처음부터 있던 역이 아니라 1975년에 주민들의 요청으로 만들어졌고 당시에 박계도 씨가 이 대합실 건물을 만들어서 기증하였다. 그런 연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다른 무인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안내판도 전혀 볼 수 없고 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이정표조차도 없다. 아무리 이전의 철도청에서 만든 역이 아니라지만 너무 무관심한 건 아닌지.

 

 

   작은 대합실에는 나무로 만든 의자가 'ㄷ' 모양으로 있다. 의자에는 먼지가 많아서 그런지 누군가가 걸레를 가져다 놓았다. 닦아서 앉으라는 이야기인가? 대합실에는 군북역과 통화를 할 수 있는 인터폰이 설치되어 있다. 처음에는 역의 조명을 조절하는 장치인 줄 알았다. 경전선을 다니는 열차는 많지 않지만 단선이기 때문에 열차가 지연되면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열차도 연쇄적으로 지연되는 경우가 흔하다. 열차가 제 시각에 오지 않는다면 군북역에 연락을 해 보는게 좋다. 다만 안내문의 글자가 너무 작고 높이 설치되어서 나도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시골에서는 어르신들이 기차를 많이 타신다는 걸 감안하여 높이를 낮추고 글자를 좀 크게 적으면 어떨까?

 

 

   원북역 승강장에는 나무로 만든 이정표가 있다. 현재는 흔하지 않은 양식이다. 승강장 한쪽에는 비석이 서 있고 돌로 만들어진 의자가 하나 있다. 승강장은 흙으로 되어 있어서 물이 고여 있고 풀이 자라고 있다. 현재 열차가 정차하고 있는 역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모습이다. 대합실만 아니라면 열차가 모두 통과하는 폐역의 모습이다.

 

 

   다른 분들은 원북역이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아서는 정말 최악의 상태인 간이역이다. 날씨 때문에 더욱 그런 듯 하다. 승강장은 턱에만 시멘트로 되어 있지만 나머지는 흙이 그대로 있고 비가 내리고 있어서 곳곳에 물이 고여 있었다.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이런 물이 고인 장소를 피해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다. 턱이 있기는 길이가 짧아서 3량 정도의 길이라서 4량인 RDC조차도 승강장 안에만 정차할 수 없다. 그런 관계로 가장 앞이나 뒤의 차량에서 타고 내린다면 그 높이차가 크다. 승강장이 아니라 철길 가운데에서 타고 내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대도시의 도시철도에서는 스크린도어까지 설치하는데 이런 역은 기본적인 승강장조차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이렇게 폐역 수준으로 방치되고 있는 이유는 주변을 보면 알 수 있다. 가까운 장소에서 경전선 복선전철화 공사를 하고 있다. 고가에 올라가는 철도를 지탱할 기둥이 세워지고 있다. 지형에 따라서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고 곡선이 많은 현재의 철길은 직선으로 뻗은 새로운 철길이 완성되면 없어질 운명이다. 새로 만들어질 경전선에는 원북역은 설치되지 않는다. 35년이 넘은 역이지만 이제는 없어질 날을 기다리고 있다. 경전선 마산~진주 구간의 복선전철화는 빠르면 2012년에 완공 예정이니 짧게 잡으면 2년도 남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원북역은 시설 개량을 위한 투자는 이루어지기 어려워서 마치 폐역처럼 방치되고 있다.

 

 

   원북역 주변의 철길은 곡선이 많고 평촌역 사이에는 언덕이 있어서 진주 방향에서 오는 열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타는 승객은 나 혼자이고 내리는 승객은 없었지만 열차는 정차하였다. 여름 휴가 기간이라서 차내에는 평소와는 달리 입석까지 있었다. 이런 간이역은 낯설었는지 많은 승객들이 창문 밖을 보면서 여기가 도대체 어디야 하면서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그렇지만 이런 역을 볼 수 있는 날도 많이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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