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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일로 바빠서 이제야 여행기를 계속하여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타이난 시내를 둘러보는 일정이 계속됩니다.

 

 

 

 


34. 5월 26일 - 네덜란드인이 쌓은 빨간 벽의 중국식 누각 치칸로우[赤崁樓] (上)

 

   정오의 타이난은 무척 더웠다. 앞에서도 이야기하였지만 태양이 바로 머리 위에서 내리쬐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점심 시간이지만 시내를 오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타이난 시내에는 문화 유적이 많이 있지만 이렇게 더운 상황에서는 돌아다닐 기운이 나지 않았다. 일단 더위를 피하면서 식사를 하고 잠시 쉰 후에 다니기로 하였다.

 


   타이완에 왔으니 타이완 요리를 먹어보는 게 좋겠지만 시내에 있는 일반 식당은 냉방 시설이 잘 되어 있지 않았다. 이미 강렬한 햇빛에 몸은 녹초가 되어 있어서 확실하게 시원한 곳을 찾았다. 그러다 보니 찾은 건 마이당라오[麥當勞, http://www.mcdonalds.com.tw ]라고 부르는 맥도날드였다. 안에는 시원하였고 소화기관에 걸려있는 기름기를 시원하게 씻어내릴 수 있는 콜라를 마실 수 있다.

 


   물론 마이당라오 안에는 타이완인들도 많이 있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주인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줄을 선 사람들의 주문을 미리 받고 있었다. 중국어가 통하지 않아서 주문이 될지 걱정하였지만 할머니는 간단한 영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번호와 세트 메뉴임을 이야기하고 이곳에서 먹고 간다고 하니 종이에 표시를 해 주었고 주문시에는 이 종이만 보여주니 바로 빅맥세트를 받을 수 있었다. 당시 빅맥세트는 125元(약 3,750원)으로 우리나라보다는 저렴하였다. 가격도 저렴하지만 감자 튀김과 음료수의 양도 많았다. 가격은 우리나라보다 더 비싸면서 양은 더 적은 일본과도 대비가 된다.


   식탁에 앉아서 햄버거를 먹으면서 눈으로는 가이드북을 보았다. 지도를 확인하면서 타이난 시내에서 볼 수 있는 곳들을 알아보았다. 냉방이 강해서 몸의 열기도 식으면서 다시 돌아다닐 수 있는 원기를 충전하였다. 매우 더운 날씨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수는 없다.

 


   천천히 맥도날드를 나갔다. 밖은 여전히 더웠지만 이제는 참고 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 타이난 역시 도심의 도로는 좁았다. 인도가 있기는 했지만 타이중[台中]과 마찬가지로 가게에서 물건을 놓아둔 경우가 많아서 피해서 가야 했다. 타이난에도 모스버거가 있었고 재래시장도 있었다. 재래시장에는 더운 낮이라서 다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도로 옆에는 은행도 있었는데 토요일이어서 문을 닫았다. 우리나라에 있는 제일은행이 이곳에도 있다. 일본에도 과거 은행의 이름을 숫자 순서대로 붙였다고 했는데 타이완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타이난에서도 타이완의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일본에 관한 걸 쉽게 볼 수 있다. 간판에서도 일본어가 같이 있고 일본 회사의 광고도 많다. 반일 교육을 너무 많이 받아서인지 나로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식민 지배를 한 나라를 계속하여 동경하다니.

 


   도로를 따라 가니 가장 먼저 방문할 치칸로우[赤崁樓]가 나타났다. 지금까지 한산한 타이난 도심과는 달리 치칸로우 앞에는 관광객들이 많이 있었다. 입장료 50元을 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니 바로 앞에 기념 스탬프가 있었다.

 


   치칸로우는 한자로는 ‘赤嵌楼’로도 표기하며 붉은 색을 띠고 있어서 홍마오로우[紅毛楼]라고도 부른다. 1652년에 네덜란드인과 중국인이 충돌한 궈화이이시찌안[郭懐一事件]이 발생하면서 축성이 시작되어 1년 후에 완성되었다. 당시의 명칭은 푸뤄민줘청[普羅民遮城, Provintia]이었다. 1662년에 명나라의 유신이었던 정청공[鄭成功]이 타이완을 점령한 후에는 동두청티앤후[東都承天府]로 이름을 바꾸고 타이완 전체에서 최고행정기관이었다. 현재는 타이완의 국가일급고적(中華民國内政部)으로 지정되어 있다.


   타이완에 네덜란드인이 들어왔다는데 의아해 할 수 있겠지만 당시에 일본에서는 나가사키[長崎]의 데지마[出島]를 중심으로 네덜란드인과 무역을 하고 있었다. 더 남쪽에 있는 인도네시아 지역을 비롯하여 동남아 지역을 오가며 활발히 오가고 있었으며 일본으로 가는 길에 타이완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지리적인 위치 때문에 일본과 무역을 한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스페인(Spain)과 포르투갈(Portugal)도 타이완에 들어온 적이 있었다. 특히 포르투갈은 1544년에 타이완섬을 발견하였을 때 아름다운 섬(beautiful island)라는 의미로 붙인 ‘이라 포르모사(Ilha Formosa)’라는 이름은 타이완을 알리는 문구에 자주 인용된다.

 


   현재 치칸로우에는 2층으로 된 누각이 2개 있다. 2층이기는 하지만 입구가 주변보다는 높기 때문에 3층 정도의 높이가 된다. 입구에서 앞에 있는 누각이 하이셴먀오[海神廟]이고 뒤에 있는 것이 원창가오[文昌閣]이다. 주변으로는 붉은 벽돌로 만든 벽이 일부 무너졌지만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학교였던 펑후슈위앤[蓬壺書院]과 작은 규모의 정원이 있다.

 

 

   하이셴먀오 앞에는 동상이 있는데 네덜란드인이 정청공[鄭成功]에게 항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당시 중국은 아시아에서는 가장 큰 나라이고 서양에서도 넘볼 수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네덜란드인들은 성 안에서 살면서 외부인들을 극도로 경계하였다고 한다.

 


   하이셴먀오 앞에는 작은 개울이 있어서 물이 흐르고 있고 한편에는 작은 폭포가 있다. 연못에는 살진 물고기들이 오가고 있다. 손을 넣으면 바로 잡힐 듯 하다.

 

 

   개울 앞에는 9개의 비석이 있다. 모두 청나라 지배 시에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작은 글자가 빽빽하게 적혀있어서 읽어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누각으로 올라가기 전에 한바퀴 둘러보았다. 누각 주변에는 네덜란드인들이 만들었던 붉은 벽돌로 된 벽이 곳곳에 손상이 되었지만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네덜란드인들은 치칸로우에서 약 4km 떨어진 항구인 안핑구바오[安平古堡]까지 터널로 연결하여 놓았다고 한다. 당시의 기술로는 어려운 일로 판단되고 있으며 네덜란드인들이 중국의 침략을 두려워하였다는 걸 알 수 있다.

 

 

 

 

 

   다음으로는 '네덜란드인이 쌓은 빨간 벽의 중국식 누각 치칸로우[赤崁樓] (下)'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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